형광펜으로 밑줄을 그으면 더 잘 외워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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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나 책을 읽다가 중요한 문장에 형광펜을 칠하면 공부가 잘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나중에 다시 볼 부분이 눈에 띄고, 핵심 내용을 정리했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표시한 문장이 익숙하다고 해서 그 내용을 충분히 기억하거나 이해했다고 볼 수는 없다.
밑줄 긋기는 공부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어떻게 표시하고 이후에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효과가 달라진다. 특히 학습자가 직접 중요한 내용을 고르는 경우와 이미 표시된 자료를 읽는 경우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밑줄을 그을 때는 무엇을 공부하는 걸까?
밑줄을 긋는 일에는 두 가지 과정이 들어 있다. 먼저 어떤 내용이 중요한지 판단하고, 그 내용을 나중에 알아보기 쉽도록 표시한다.
예를 들어 과학 교과서에서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를 읽고 있다고 해 보자. 원인에 관한 문장과 실제 사례에 관한 문장이 함께 있다면, 어느 부분이 핵심 설명인지 생각한 뒤 밑줄을 그을 수 있다.
이처럼 중요한 내용을 고르는 과정은 글을 이해하려는 활동이 될 수 있다. 그리고 표시한 문장은 복습할 때 필요한 내용을 빠르게 찾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모든 밑줄이 같은 역할을 하지는 않는다. 중요한 문장을 스스로 판단해 골랐는지, 이해하지 못한 채 눈에 들어오는 문장을 칠했는지에 따라 공부하는 과정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직접 표시하는 것과 미리 표시된 글을 읽는 것은 다르다
Ponce 등(2022)은 밑줄 긋기에 관한 연구들을 모아 학습자가 직접 표시하는 경우와 교사 또는 교재가 중요한 부분을 미리 표시해 주는 경우를 비교했다.
분석 결과, 학습자가 직접 표시한 경우에는 배운 정보를 기억하는 검사에서 이점이 나타났다. 그러나 글의 내용을 이해하는 검사에서는 뚜렷한 이점이 확인되지 않았다. 반면 중요한 부분이 미리 표시된 자료를 읽은 경우에는 기억과 이해 검사 모두에서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났다(Ponce 등, 2022).
이 결과가 직접 밑줄을 긋는 것이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처음 배우는 내용이 어렵다면 어느 문장이 중요한지 판단하는 일 자체가 부담이 될 수 있다. 핵심을 잘못 골라 표시할 수도 있다. 반대로 교사가 중요한 내용을 정확히 표시해 주면 학습자는 핵심을 찾는 데 들이는 노력을 줄이고 설명에 집중할 수 있다.
다만 밑줄의 효과는 학습자의 교육 단계와 자료의 특성 등에 따라서도 달라졌다. 따라서 미리 그어진 밑줄이 언제나 더 좋다거나, 직접 표시하는 방법이 무조건 효과적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문장을 기억하는 것과 내용을 이해하는 것은 어떻게 다를까?
글에서 중요한 문장을 찾아 기억하는 일과 그 내용을 이용해 새로운 질문에 답하는 일은 다르다.
예를 들어 '식물이 빛을 이용해 양분을 만든다'는 문장에 밑줄을 그었다고 해 보자. 이 문장을 기억하면 식물이 양분을 만드는 데 무엇을 이용하는지 답할 수 있다.
하지만 빛이 부족하면 어떤 변화가 나타나는지 설명하려면 그 문장에 담긴 뜻과 관련 과정을 이해해야 한다. 중요한 문장을 외웠다는 사실만으로 새로운 상황에도 설명을 적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Mason 등(2024)은 화면에서 글을 읽으며 밑줄을 사용하는 조건을 연구했다. 밑줄을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전반적인 학습 성과가 좋아지지는 않았다.
한편 학습자가 표시한 정보의 질은 글의 이해와 새로운 문제에 적용하는 능력을 평가한 일부 검사 결과와 관련이 있었다(Mason 등, 2024).
중요한 내용을 잘 골라 표시한 사람이 일부 검사에서 좋은 성과를 보였다는 뜻이다. 다만 원래 글을 더 잘 이해하는 사람이 중요한 정보를 잘 골랐을 가능성도 있으므로, 좋은 밑줄 자체가 높은 성적을 만들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이 연구들이 보여주는 것은 형광펜 사용 여부보다 표시한 내용과 학습 과정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밑줄을 그은 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할까?
밑줄을 그었다면 표시한 부분을 반복해서 읽는 것으로 공부를 끝내지 않는 편이 좋다.
먼저 표시한 문장이 어떤 질문의 답인지 생각해 볼 수 있다. 원인과 결과를 설명한 단락이라면 '무엇이 일어났는가?'뿐 아니라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가?'에도 답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그다음에는 책을 잠시 덮고 기억나는 내용을 직접 설명해 볼 수 있다.
이러한 방식은 기억한 내용을 다시 꺼내 보는 '인출 연습'과 연결된다. Roediger와 Karpicke(2006)의 실험에서는 공부한 글을 반복해서 읽는 것보다 기억해 내는 검사를 거친 쪽이 시간이 지난 뒤 더 잘 기억했다(Roediger와 Karpicke, 2006).
이 연구가 형광펜의 효과를 직접 검증한 것은 아니다. 다만 밑줄을 그은 뒤에도 실제로 기억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한 이유를 뒷받침한다.
밑줄을 긋는 동안에는 중요해 보였던 문장도 책을 덮으면 잘 떠오르지 않을 수 있다. 그럴 때는 표시한 부분과 앞뒤 문맥을 다시 읽고, 이해한 내용을 자신의 말로 설명해 보는 것이 좋다. 인출 연습은 이런 활동을 더 자세히 다룬다.
형광펜은 중요한 정보를 찾고 복습할 부분을 정리하는 도구다. 밑줄을 많이 그었다는 사실보다, 그 내용을 책 없이 설명하거나 새로운 질문에 활용할 수 있는지가 공부의 성과를 판단하는 데 더 중요하다.
출처 및 참고자료
- Ponce·Mayer·Méndez, 2022 — Effects of Learner-Generated Highlighting and Instructor-Provided Highlighting on Learning from Text: A Meta-Analysis ↗
- Mason 등, 2024(온라인 2023) — Highlighting and highlighted information in text comprehension and learning from digital reading ↗
- Roediger·Karpicke, 2006 — Test-enhanced learning: Taking memory tests improves long-term retention ↗


